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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우연이라는 것. 그것의 풍부한 유머감각과 개연성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 요즘 꽤나 잦다. 정밀한 설계도대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때로는 무슨 순번을 정하듯, 혹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듯 서로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시애틀에 사는 친척의 소식을 듣고, 하늘이 넓게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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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2020/09/03

  

# 물을 모으는 사람

  그가 물을 모은다는 소릴 들었다. 순간 한적한 강가에 배를 띄우고 물고기를 기다리듯 손을 강에 넣고 한줌 한줌 물을 쥐어 담으려는 그가 연상되었다. 물은 천천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이내 손에 남는 것은 새가 한 번 쪼아 갈증을 해소할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 양조차 소중하게 생각하며 늘 가지고 다니는 파란 유리병에 흘려 담고서는 양손에 남은 물기를 천천히 얼굴에 바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물을 모으러 어디론가 배를 저어 갈 것이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때쯤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수집가의 망상처럼 터무니없어 보일 순간에 그는 사라졌고, 어디선가 또 그런 모습으로 보일 때쯤 그의 얘기는 한낱 어리석은 사람의 에피소드쯤으로 치부되어 여기저기 떠돌았다.
그가 특별 수질 조사원이라는 설득력 있는 추측에서부터, 그의 아내의 유해가 강물에 흩어져 서글픔에 그 남은 잔재를 물을 통해 다시 찾으려 한다는 감상적인 얘기까지 들렸다. 지독한 피부병에 치료 차원에서 모은다는 소문에 누군가는 그의 행적을 따라 물을 담아가기도 했다. 때아닌 종말론에 그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느님의 예시에 따라 무언가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풍문도 생겼다. 얘기는 불어난 강물처럼 어수선하고 흉악할 만큼 이상하게 힘을 가지고 퍼졌다. 너도나도 맞장구를 쳤고, 얘기의 핵심은 온데간데없이 누군가의 친구로, 사촌으로, 선생님으로, 한때 더없이 순했던 직장 상사로 불리며 알 수 없이 측은하고, 딱한 사람으로 회자되었다

  그는 사회의 외면에 질려 홀로 깊은 자아로 숨어버린 사람이었고, 이웃의 무관심에 지친 평범한 인간으로 개인주의 사회의 병폐가 낳은 이단아였다. 어느 면에서는 실천적인 환경운동가였으며, 살아있는 무정부주의자적 지성인이었다. 그중에 하나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가 진정 누구였든, 왜 그 일을 시작했든 궁금하지 않았다. 어느 강에 있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의 파란색 병이 다 채워지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가 그 병을 다 채울 때쯤이면 세상의 소문은 점점 사라져있을 터였고, 그가 물을 모으는지 흙을 모으는지도 헷갈려 하며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울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숨죽여 그를 기다렸다가 아무 목적도 없이 그의 병을 가로채 그저 익살스러운 유희로 생각할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가 처음의 이곳으로 돌아와 조용히 다시 물에 손을 담그며 조심스럽게 나를 응시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그도 미처 알지 못한 어느 심연의 기억에서 나를 떠올려, 아주 오래 전에 그에게 가장 따뜻한 강물을 흘러 보내려 했다는 것을 깨달아 준다면 그저 기쁠 것이었다. 결국 이런 마음도 세상과 다르지 않은 것인가

  그의 새로운 소식은 바람 따라 어느 날 내 곁에 다다랐다. 겨울 강을 따라 북쪽으로 갔다고 한다. 나는 그를 기억하는 최초의 물풀이 되어 다시 하염없이 강의 한가운데를 응시한다. 어쩌면 그가 과연 물을 모으는 사람이었는지 혼자 되뇔지도 모르겠다. 아예 그를 잊어버릴 수도 있다.  어차피 물은 그렇게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북쪽으로 자라고 싶어졌다. 태양이 어디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