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알아들어야 대답을 하지. 역시 그는 내 대답은 아예 기대도 안 한다는 표정으로, 테이블위의 접시와 포크 등을 챙기고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나는 시로코가 떠난 의자에 앉아 와인을 조금 들이켰다. 아니..이게 다 콜라 때문인까. 사육제의 밤은 뭐고, 또 아메리칸 고딕 아줌마는 뭐야. 아. 락씨도 아니고 락씨 남매까지. 그런데 머리가 무거우면서도 갑자기 즐거운 이유는 뭘까.
시로코라...시로코라..
밖을 그렇게 응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따. 한 30분쯤 흘렀을까. 락씨가 한 손에 샌드위치가 담긴 접시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사실 락씨가 부엌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딴 생각을 하던 나는 왠지 그가 몹시 낯설어서 한참을 쳐다봐야 했다. 꽤나 나도 정신없었던 모양이다.
“샌드위치 만들었어요? 배 안 고픈데.”
“내가 좀 먹게. 머리가 아프다. 여기서 좀 먹어도 되지?”
락씨는 그러고서 소파에 앉아 묵묵하게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는다. 좀 쓸쓸하고 메마르게.
“뭐 마실 거라도 줘요? 아님 이 와인이라도?”
“페를.” 고개를 저으며 락씨가 나지막하게 나를 부른다.
“네?”
“브런치 생각 좀 해봤어?”
“네, 음...그럼요. 우선 공간이 좀 협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소파를 나무 의자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어요. 이번 주에 당장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고. 다음 달부터 하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나는 조금 기습이다 싶을 정도의 질문에 두서없이 대답하고 만다.
“뭐. 그럼 메뉴는 어떻게 하고?” 락씨가 감흥 없이 묻고 있다.
“저번에 우리 시식했던 메뉴 중에서, 우선 세 가지만 해보죠. 차차 늘려나가고요.”
우물우물 맨입에 샌드위치를 너무 재미없게 먹는 락씨를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목이 메일 지경이다.
“저기...”
“뭐.” 락씨가 날 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대답한다.
“내가 뭐 잘못했어요?”
답답한 놈이 우물을 찾는 법이라고 했나. 아닌가. 매도 먼저 맞는게 나은건가.
락씨가 이번에는 제대로 나를 응시한다.
“페를 너 말이야.”
“네.”
“그 버릇 고쳐야 한다고 봐.”
나는 순진하게 무슨 말이냐며 눈을 치켜 뜨고 락씨를 쳐다본다.
“내 눈치 보는 거.”
참..아니, 그걸 아는 사람이 지금 이러고 있나. 시로코 일도 그렇고 지금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데, 꾸역꾸역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브런치 애기만 하고 있으니, 내가 눈치를 안 볼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뭐 잘못 한 거예요? 아니에요?” 이번에는 나도 물러서지 않는다.
“시로코 어떻게 생각해?”
아...또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
“뭘 생각할 틈도 없이, 동생이라면서요.”
락씨가 이번에는 날 보더니 짧게 웃는다. 간담이 서늘할 지경.
“내 동생이 아니면, 좀 생각해 보는 건가?”
“동생이랑 안 친한 척 하는 게 익숙하죠?”
사람들은 가끔 그러는 것 같다. 일부러 친하지 않은 척. 모르는 척. 이해하지 않는 척 하는 행동들. 이유는 잘 모르지만,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일부러 그러면서 상대방을 외롭게 만든 적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힘들게 하는 방법은 세상에 너무도 많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두룩하게.
“아니, 친해. 친한데, 그 애는 내게 욕심이 너무 많아.”
“무슨 욕심이요?”
“내가 오빠도 되고, 남자 친구도 되고, 또 아버지 역할도 해주고. 뭐 그러길 바라는 기대감이 있어. 근데, 나는 그러질 못하거든. 오빠 역할 하기도 버거운데, 뭐 그리 욕심이 많은지. 그래서 그렇게 많이 바라는 게 아니라고 일깨워주면, 저렇게 화를 내. 정말 복잡다단한 아이야.”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여동생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만약 내가 시로코같은 여동생이 있다면, 아니 그냥 여동생이라고 할지라도 늘 뭔가를 해주고 싶을 것이다.
“어렵지.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 왜 저렇게 나한테만 응석을 부리는지 모르겠어. 바보같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좀 잘해주라고 충고하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다. 만약에 시로코의 응석이 나도 싫을 정도로 부담스럽다면, 그땐 얘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응석에는 이해불가한 면이 너무도 많다. 락씨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어깨라도 한 번 두드려주고 싶다. 그에게 이런 고민이라도 있어야 좀 인간다워 보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오늘 저녁에는 손님 없어?”
락씨가 묻는다.
“네.”
“우리 좀 더 분발해야 해.”
“네, 그래야죠.”
“그렇게 걱정 안 하는 척 하는 게 넌 익숙하지?”
락씨가 묻는다. 뭔가 큰 건으로 갑자기 들킨 것처럼 오싹하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 걱정 많이 해요.”
나는 훗훗 웃어넘긴다.
“시로코가 자주 카페에 올 거야. 앞으로는. 브런치 하게 되면 혼자 홀에서 힘드니까. 내가 부탁했어.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나 대신에 서점에서 매큐와 함께 일할거야”
“복병이었네요. 시로코.”
“맞아. 꽤 그런 면이 강하지. 조심해야 할 거야.”
“뭘..조심해요?”
락씨가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그러고서는 일어나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가 버린다. 또, 또 저런다. 뭘 좀 얘기하려고 하면 꼭 저렇다니까. 이 아메리칸 고딕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