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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들린 마트에서 치즈 스콘을 한 개 사먹었다. 처음 생긴 곳이라 그런지 반갑기도 하고, 그 고소한 향과 모양에 눈을 떼기도 힘들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며칠 전에 스콘을 만들긴 했다. 예상보다는 조금 단단한 스콘이 되어서 실망스러웠지만, 모양이라도 비슷하니 다행이지 않은가. 아까 스콘을 팔고 있는 참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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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found inside (2)
2009/10/14

 

  그렇게 달려가던 차가 멈춘 곳은 한적한 어느 길가. 집근처가 아니다. 장면은 바뀌어 차에서 내린 사람은 그녀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으로 늘었고, 먼 이국의 어느 거리를 거닐듯 모두 다 느긋하다. 그녀 역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접어둔 채, 그들을 묵묵히 따라가고 있다. 아까의 그 아주머니가 아름다운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다가와 연신 거리의 이름들을 알려주고 있다. 그녀는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거리의 명칭은 계속 바뀌는데 풍경은 그대로이다. 사막에서와 같은 모래바람이 불고 있고,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모두들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다. 그들 무리의 맨 마지막에서 그녀는 이 끝이 없을 것 같은 여정에 조금 어리둥절할 뿐이다.                                                                                                            

갑자기 길 저편에서 횡단보도가 나타난다. 빠르게 길을 건너려는 사람들을 따라 그녀도 뛰어간다. 멀리 오아시스처럼 희미하게 건물 한 채가 보인다. 서서히 원근감은 사라지고 평행선으로 그어진 어느 선의 중간쯤에 사람들과 건물은 나란히 줄을 맞추어 서 있다. 그리고 모두들 건물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 무언가를 의논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녀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앉아 있다. 돌연, 남방을 입은 아저씨와 긴 머리의 아주머니는 열리지 않는 엘리베이터 문을 부수려한다. 그리고…….

“아….”

“왜요‥, 왜 그러세요?” 남자는 깜짝 놀라 그녀를 쳐다봤다.

“그냥, 이다음부터는 잘 생각이 나질 않아서요. 끝까지 다 완벽하게 기억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마지막은 흐리멍덩해요.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는 건가요? 아님, 기억하기 싫은 건가요?”

   남자는 사실 여자에게 말한 것이지만 이젠 두 사람 모두에게 이 질문은 의미가 생긴다. 그는 여자의 기억이 마무리되어 어느 시점에서 제대로 끝나기를 바라고 있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과연 필요에 의해 기억이 지워질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결국 엘리베이터는 부서지지 않았고, 그 건물은 어느 학교의 기숙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는 꿈이 끝났어요. 끝부분이 타버린 종이 한 장을 들고 서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드네요. 네, 그렇게 끝이 난 것 같아요.”

여자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천천히 말했다.

“그럼, 끝났네요.” 그의 말투는 간결하고 다분히 일상적이었다.

“뭐가요?”

“꿈이요. 당신이 지금 말한 것처럼, 끝났다고요.”

   남자는 거듭 강조하며 말끝에 힘을 준다. 하지만 아까 그녀가 ‘이제부터가 꿈의 시작이에요’ 라고 말했을 때부터, 예기치 않게 출발점에 다시 도착한 방랑자처럼 어렴풋하게 혼란스럽다. 그는 그녀의 꿈을 이해하기 보다는, 아주 가까이에서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실재하고 있는가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패턴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에 환상은 실제가 되어 꿈속의 그녀 자체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때론 자신을 뽐내고 자만하기도 했고, 비겁하게 숨기도 했으며 정체모를 어두움을 향해 겁 없이 뛰어들기도 했다. 시간에 쫓기고 있었으나 낮과 밤은 어느 지점에서 뒤바뀌었고, 도시와 외곽의 경계가 없는 외딴 곳에서 과거가 시간을 지배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외롭고 유치했으며, 어느 누구는 몹시도…나약했다.

“왜 이 꿈이 당신에게 중요하죠?”

남자는 처음에 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다르게 물어보는 건 어때요? 왜 내가 이 꿈에서 중요한 것이냐고‥.”

여자는 그에게 말하고 싶다.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 믿는 수많은 이미지들, 소리들, 느낌들, 촉감들. 모두 약간씩 휘어질 뿐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고. 그걸 혼동하면서부터 더 엄격하게, 현실에서의 그녀는 휘청거리고 있다고 말이다.

“네, 다시 묻죠. 당신은 이 꿈에서 왜 중요한가요?”

“…….”

   그녀는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꿈도 아니고, 그녀 자신도 아닐 것이다.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추상화시켜서 어느 일부분만 떼어놓고 본다면, 몇 개의 줄무늬와 둥근 도형들 그리고 소란스럽지만 가깝지 않은 소리 뭉치로 표현될 한 점의 그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꿈이다. 그녀가 활동하지 않는다고 믿는 시간의 일들이었다. 아무런 지침도 없고 방향도 애매한 그러나 이례적으로 선명했던 어떤 형상 말이다. 지금 그녀는 낯설고도 함축적인 진실에 다가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애쓰고 있다. ‘믿는 체하는 것이 더 힘들어’ 라고 속삭이고 있을 뿐, 차가운 농담처럼 뒤가 시리다.

“아침마다…, 전 거울 앞에 서서 혼자 이렇게 얘기해요. ‘나는 지금 온전한가?’ 라고 말이죠. 그리고 무심코 무시해버렸던 지난밤의 감정들을 긁어모아요. 그렇게 하나씩 다 모아서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제각각 위치가 잡히죠. 그리고서는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C음을 그 사이에 집어넣고 마무리를 해요. 그게 반복되고 반복되면, 굳이 힘들이지 않고도 내가 그린 악보에는 균형이란 것이 생기죠.”

남자는 물끄러미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녀가 무척 힘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사소한 진동에도 그 주위의 무언가는 반드시 반응하게 마련이다. 얼마만큼의 반동을 보이는지는 저마다의 꿈처럼 다르다. 그녀는 딱 지금만큼의 세기로 흔들리고 있다.

“칼 융이 그 말을 듣는다면 반가워하겠네요.”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온전한 것은 모르겠지만, 온건하게는 살고 싶어요.”

   그는 여자가 말하는 온건의 뜻을 되짚어 본다. 그건 나약한 사람에게는 건전한 발상을, 이를 퇴보라 여기는 사람에게는 재미없는 안전함을 의미했다. 그가 보기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제도권 밖의 채널들을 수용하기에는 그녀 자체가 너무 물렁했다. 그건 본인이 제어하는 수준을 넘어서, 일정한 관계를 통해서 소통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비어 있는 하나의 의자는 안으로 이야기를 삼키지만, 두 개 이상 모여 있는 의자들은 서로를 향해 이야기를 내뱉는다. 결국 그녀가 지금 혼동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그녀는 충분히 많은 의자들 사이에서 자꾸만 이야기를 삼키려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녀가 말하고 있다고 여기겠지만 그가 보기엔 그녀... 입안에 말들이 꽉 물려 갇혀있다.

“궁금한 게 있어요.”

“뭔가요?”

“여기 오는 사람들을 치료해 줄 정도로 당신은 정말 온전한가요?”

“아뇨.”

남자는 딱 잘라 말했다. 여자는 그런 그를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본다. 짐작했던 대답은 아니었지만 애써 스스로를 변명하려 들지 않는 그가 진솔하게 느껴진다.

“온전하지 않아서 가능하다고 봐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전, 여기 오는 그 누구라도 이해하려고 애써요. 무엇을 얘기하든 간에 진실이라고 믿고요. 충분하게 내 앞의 상대에게 감정이입이 되지 못할 때도 간혹 있죠. 그렇지만 끝까지 포기하진 않아요. 그러면 상대방이 좀 더 터놓고 말하려고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열어놓아요. 네, 그렇게 되는 거죠.”

그는 말을 마친 후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네요. 오늘은 제가 치료하고 있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군요. 끝날 때까지 계속 이렇게 대화를 하면 되는 건가요?”

“치료를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데요.”

여자는 사뭇 진지하게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음… 예상하건데, 이 방의 그림들과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군요. 맞죠?”

“아니요, 이미 처음에 여기 들어섰을 때 다 했어요. 그럼 그 다음은요?”

그녀가 재촉하듯 물어봤기에, 그는 조금 놀랐다.

“사실, 그림이 당신에게 꼭 필요한건 아니에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건 결국 하나의 도구죠. 필요에 의한. 당신이 필요해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걸 의존이라고 거북해하면 더더욱 그렇죠. 아까 말한 꿈에서 검정과 회색이 당신에게 두려움과 떨림을 주고 있었다면, 녹색과 빨강 그리고 그 사이 사이의 틈을 메우던 누드의 빛깔이 점점 깊이 있는 안정감을 주었죠. 하지만, 그건 단편에 불과해요. 색이 다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밖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당신이 의심하고 있는 부분들 역시 그런 것들이고요. 안 그런가요?”

남자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애매한 위안이 아니라, 누군가의 솔직한 지적이다.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것은 쉽다. 아니, 쉽게 기회가 올 수 있다. 하지만 그 기회를 통해서 무엇이라도 꾸밈없이 말해주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

“그렇군요.”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갑자기 조용해져 다시 소파의 안락함으로 온몸을 맡긴 그녀가 낯설게 느껴졌다. 조바심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다시 어떤 얘기라도 하길 바랐다. 오늘처럼 긴장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드물었다. 늘 그에게 치료의 형식은 일정하게 벗어나질 않았고, 상대 역시 그의 선택에 적절하게 반응했다. 그녀가 이렇게 돌아가 버리면 결국 그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또 한 번 드러내는 결과가 된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으셔서 다행이었어요. 참.”

그녀가 별안간 말을 꺼냈다.

“누구라도 그렇게 말하진 않을 겁니다.” 그는 대답했다.

“아니요, 정말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잖아요.”

확답이라도 받을 것처럼 그녀는 그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그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뭐가 그렇게 매번 다행인걸까.

“저 그림이요‥.” 그녀는 몸을 앞으로 숙이며 손가락으로 정면에 보이는 그림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그도 고개를 돌려 그림을 쳐다보았다.

“파란색 상처에… 파란색 대일밴드를 붙인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흐음‥. 글쎄요, 그러면 상처는 감춰지지 않고, 결국 아물게 되는 건가요?”·

그는 지금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아니요. 상처는 밴드를 닮아가고 밴드는 상처에 동화되는 거죠….”

   여자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는 그녀의 말을 음미하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림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말처럼 겹겹이 입혀진 색들은 서로를 닮아 있었다. 색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캔버스 위에 칠해진 선의 뭉치들, 면의 덩어리들, 그리고 그 위의 물감들은 하나의 통합적인 상태로 늘 보였다. 각각이 따로 따로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서로를 열망하고 시기하며 때로는 거칠게 밀어 붙이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런 느낌을 온몸으로 받으며 눈앞의 그림을 통째로 이해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찰나와 같은 그 순간은 영원의 흐름처럼 까마득하면서도 근원적인 것이었다.

“전,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이상한 일이죠. 그림으로 치료를 한다는 사람이 그림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진심으로 말했다. 우습지만, 이렇게 자조 섞인 이야기가 그녀 앞에서 튀어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아무 얘기라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결국 이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예감은 들었다. 뜻밖이면서 어색하지 않게, 이렇게….

“저도 그래요. 전 저 스스로도 다 아직 모르겠는걸요.”

그녀는 오랜만에 웃음이라는 것을 가져본 사람처럼 해맑게 웃는다. 그런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꾸밈이 없다. 그녀는 힐끗 창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묻는다.

“아, 저기 위에 시계가 있었네요. 아… 근데 왜 지금 그게 보였을까요.”

살짝 얼굴을 붉히는 그녀는 정말 많이 놀란 것 같다.

“다들 그래요. 저도 매번 깜박하고 그냥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는걸요.”

그도 같이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흐음. 가실 시간이네요.”

   잠시 동안 그들은 그렇게 시계를 바라보았다. 방안의 공기마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다 서로를 향해 있었다. 시계 바늘이 드디어 열두시 반에 다다랐다. 그녀가 그렇게 놀란 것은 아마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는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니면 더 들어야 할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가볍지 않게 시간이 흐른 것 같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최소한 무의미하진 않았다. 남자는 소파 한 귀퉁이에서 노트를 다시 집어 들었다. 여자는 귓불을 매만지며 뭔가 할 말을 찾는다. 왠지 평범한 인사를 건네며 일어서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다음 예약 날짜를 잡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예약명부 페이지를 펼쳐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남자를 가만히 쳐다본다. 여전히 노트에 시선을 둔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저… 가시기 전에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여기 전문직이라고 되어있는데, 실례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 다음에 오시게 되면 그 얘기도 좀 하려고요.”

여자가 말없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차갑게 굳어진 여자의 눈빛은 뭔가 망설이고 있는 듯 불안하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여자를 쳐다봤다. 참을성 있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벌써 문 앞에 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정신과 의사에요.”

스르륵 문이 열리고, 남자의 시야에서 조용히 그녀는 사라졌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