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내 단짝은 매번 편지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가사를 빼곡하게 적어 내게 건넸다. 흡사 작은 기차가 줄지어 지나가는 모양과 같은 친구의 글씨체는 나를 웃게 만들었고, 그 질서정연함이 주는 평온함은 어느 유명한 인사의 글귀보다도 강력하게 날 지켰다.
다른 친구의 어머니는 나만 보면 뭘 만들어 주시려고 온갖 애를 쓰셨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금방 가야한다는 나에게 중국 음식을 시켜 항복(?)하게 만들기도 하셨다. 딸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기특하다고 하셨는데..어머니..그때 만화책 보고 있었다고 고백해야 할까요.
나는 어떠했나..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학교 앞에서 종종 꽃을 조금씩 묶어 잘 팔았고, 나는 오백원, 천원하는 그 묶음을 사서 친구와 나눠 가졌다. 그리고 장미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선물했다. 그 친구는 생소해 하면서도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왠 꽃이냐' 라는 표정이었지만..
그런 자잘한 내용들에 감사하고, 소중할 여유들은 지금,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외면했다고 하는 표현이 정답일 것이다.
직장을 옮겨서, 오해가 있어서.. 연락처가 바뀌어서..혹은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나는 그 친구들과는 이제 연락이 되지 않는다.
누구의 탓도 아니고 결국은 나의 끈기없는 부주의겠지만..아련하고 마음이 허하다.
허한 마음에 얼마나 강하게 그리움이 존재했는가.
그런 소중한 인연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나.
그런데, 아주..오랜만에 내게 친구가 생겼다. 날 다시 고등학생이 되어 작은 셀레임을 갖게 하는 친구. 어떤 이유라고 해도..더는 잃고 싶지 않는 그런 소중한 인연.
이번에 직접 재봉틀로 만든 천에 현미팩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전자렌지에 데워 어깨가 좋지
않으신 엄마의 품에서 마냥 따뜻하고 포근한 그 선물.
나는 생각지도 않게 얼굴이 빨개지며 좋아했고, 그 친구에게 나는 어떤 선물로 보답해야 할지..
어려운 고민이 생겼다. 그렇지만, 한없이 기쁘고 고맙다.
'무왕불복(無往不復)' 지나간 과거는 반드시 되풀이 된다.
이 말을 가슴에 담아, 다시 돌아온 따뜻한 마음을 잘 이어가고 싶다.
회색빛에 보라색이 물든 나와 너무도 닮아..
회색빛에 주황과 파란색이 교차하는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for K.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