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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건 무척이나 상큼하고 건강한 느낌의 맛이었다. 아무런 정제도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이랄까. 그러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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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7

beyondcafe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저기그냥 한 말인데. 그게 그렇게 웃겼나요.” 안경을 벗어 눈을 살짝 비비며 우리를 쳐다보는 매큐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락씨가 나를 힐끗 보더니 이제 그만 웃으라는 신호를 보낸다.

, 근데 너 오늘 좀 참신하다. 대박이야 너!”

장난스런 눈빛의 락씨는 매큐의 등을 세게 한 번 치더니, 벌떡 일어나 바의 한쪽에 있던 미니 냉장고를 열고 생수병을 꺼냈다. 세상에나! 박력분을 부러워하다니. 혹시 밀가루 박력분에는 있고 자신에게는 없는 그 박력이라는 것 때문에 요즘 그렇게 고민이었던 걸까. 아무튼 매큐의 우울함에 대한 단서가 하나 생기긴 했다. 그의 엉뚱한 점에 대한 단서와 함께 말이다. 물을 마신 락씨가 녀석에게 다가오더니 어깨에 손을 얹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말이야. 또 다른 건 없어? 그러니까....요새 잠은 잘 자고?”

이런 감상적인 질문이 매큐에게 통할까 싶었는데, 그것은 괜한 기우에 불과했다. 녀석이 갑자기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짧게 쉬는 것이 아닌가. 갑작스러웠다. 누군가에게 잠은 잘 자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 이렇게도 많은 감정을 한 번에 이끌어 내다니.

? 밤마다 루시퍼라도 쫒아오는 거야?”

락씨가 매큐 앞에 앉아 그를 주의 깊게 쳐다보며 물었다.

? 루시퍼가 누군데?”

진심으로 나는 그가 누군지 몰랐다.

사탄의 이름이잖아. 그 루시퍼 말이야. 페를! 정말 몰랐어?”

락씨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내가 그 깜찍한 이름이 사탄인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매큐는 무표정으로 무언가 생각하고 있다. 역시 그럼 그 문제였나. 매큐는 종교와 관련하여 비교적 조용한 타입이다. 다른 이들처럼 이 문제를 남에게 설교하거나 충고하거나, 의미를 확대시키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다. 그저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말이다.

하느님이요...,” 천천히 매큐가 입을 열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베풀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어요. 그것이 지금의 고난주간 세족 목요일의 유래죠. 사실, 발을 씻겨주신 주님의 은혜는 스스로가 권위로 군림하지 않고 섬기는 자세를 보이겠다는 희생이자 의지로 해석되고 있어요.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런데, 요즘 자꾸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 주위에서 진정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섬기는 자세로 종교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라는 생각이요. 저 역시도 목회자가 되겠다고 공부는 하고 있지만, 제대로 믿음을 유지하며 그 신념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을까 두려워요. 참 이상한 일이죠. ……. , 제가 왜 지금 이렇게 심각한 얘기를 할까요.“

우리는 갑자기 말을 잊은 것처럼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각자 생각에 잠겼다. 카페 안의 익숙한 재즈 선율은 공간을 가르고 시선을 분리시키며 태연하게 흐르고 있었지만, 매큐의 조용한 울림과도 같은 이야기에 모든 것이 희석되는 것 같았다. 그저 정적의 한 순간처럼 굳어져 있었다. 상황별 냉소주의자인 락씨마저 뭔가 큰 낭패에 빠진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 내가 입을 열었다.

글쎄이게 매큐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와 상관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암튼 네가 그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나서 말이야. 혹시 풍화혈이라고 들어봤어? 돌에 생긴 구멍을 말하는 건대, 대게 바람이나 파도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하더군. 예전에 사진으로 한 번 본 적이 있어. 어느 돌덩이가 벌집의 구멍들처럼 그렇게 풍화혈로 온 몸에 파인 자국이 가득했지. 그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제일 단단하다고 여기는 돌이, 내가 제일 사소하게 여기는 바람에 파였다. 근데 그 돌은 여전히 돌이다.’ 라고. 매섭게 온 몸이 상처로 뒤덮였지만 언제나 그 돌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이야. 이때 관점이 하나 생겨. 여기서 과연 돌을 얘기할 것이냐, 아니면 돌에 구멍을 낸 그 바람을 얘기할 것이냐 라는 것이지. 매큐, 만약 너라면 무엇을 얘기하고 싶겠어?”

말하고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만큼 모호한 이 얘기를 녀석은 꽤나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사실, 그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매큐도 알고 있으리라. 락씨는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면서 이 모든 것에 무지한 사람마냥 괜스레 딴청이었다. 그런 락씨를 보며 우린 다 같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고, 매큐는 혼란스럽지만 의심은 없는 표정으로 기지개를 크게 폈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마음 한 쪽이 시렸다. 각자 한 번쯤은 무엇이든 간에 흔들리고 좌절하며 상처 입는다. 그 시련 앞에서 허약했던 지난날이 생각났다. 아무도 진정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으며, 오직 스스로만을 믿으며 고독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삶의 진리만 굳어질 뿐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더 울창하게 깊고 푸른 존재들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시점이 되면 그 해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담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매큐, 근데 복학은 언제 해?” 락씨가 화제를 돌려 물었다.

돈 좀 모아지면요.” 매큐가 조금 흐릿하게 미소를 짓는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녀석의 눈빛이 왠지 어둡다.

서점에서 알바한다고 뭐 얼마나 모으겠어? 생활도 해야 하는데.” 내가 말했다.

그게요, 실은 제가 아니라, 저희 부모님이요. 지금 제 등록금 모으시고 계세요. 저도 더 분발해야죠. .”

그렇구나.”

나는 괜한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뜨끔하다. 이 세상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처럼, 인생에서의 고민은 단지 종교와 신념으로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리라. 매큐의 메마른 웃음을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락씨는 물끄러미 매큐를 쳐다보고 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을 읽는 것과, 누군가에게 그 마음을 드러내는 것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새삼스러울까.

, 그나저나 지금 몇 시쯤 되었어?” 락씨가 매큐에게 묻는다.

, 340분이요. 벌써 이렇게 됐나.”

흐음. 설거지는 하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네. 아휴 귀찮다. 어이! 카페 사장님 돈 좀 벌면 부엌에 식기 세척기 하나 사죠.”

글쎄요. 벌게 될까요.” 나는 자못 냉담하게 말했다. 장난이 깃들긴 했지만, 이 시간이 이렇게 금방 지나간 것이 조금은 섭섭하다. 아니, 지금의 기분이 너무 빨리 흐트러지는 것이 못마땅하다. 매큐는 묵묵하게 테이블 위의 접시들을 치웠다.

어느 때의 오후는 튼튼한 목재 색과 같은 빛깔로 고요하게 마음을 흔든다. 늦은 오후의 창밖의 하늘은 짙은 파랑처럼 짙고 깊어 보인다.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았던 락씨와 새삼스럽게 친한 동생처럼 가깝게 느껴진 무채색의 매큐도, 그 만큼 진하게 보인다. 테두리에 밝은 주황색을 칠한 것처럼 말이다. 너무 즐거웠고, 또 너무 많은 기대와 생각이 오갔던 시간. 아무 의미도 없이 그저 매일의 나날을 채워나가려 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 애초의 의도와 잘 맞아 떨어진 모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편안하게 배를 채우고 서로를 걱정했던 오후의 값진 시간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

가져왔던 식기들을 다 챙기고 락씨는 일단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갔다. 저녁 에약 손님을 위해서 저녁에 다시 오기로 했다. 락씨는 차에 타기 전에 갑자기 문 앞에서 매큐와 악수를 했는데 흡사 그 모습이 오늘이 그 녀석의 마지막 근무일인 것처럼 심각했기에 매큐는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악수를 끝내고 락씨가 매큐에게 꽤 심각하게 전화번호를 묻자 녀석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그는 락씨다.

매큐와 나는 카페 바닥을 청소하고, 간단하게 부엌을 정리했다. 녀석의 일하는 스타일이 워낙 야무져서 직원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스개 소리로 서점은 그만두고 이곳에서 일하자고 했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말을 잇지 못한다. 그 당황하는 모습에 도리어 내가 놀라 농담이었다고 얘기하며 그를 안심시켜야 했다.

녀석의 걱정거리는 아직 진행형인 것 같다. 설사 그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단순히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단답형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다만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순간의 일들이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끙끙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무도 생색내려 할 필요 없이 다독이며 그렇게.

이제 가야겠어요.” 매큐는 창밖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바로 집으로 가는 거야?”  왠지 더 아쉬운 느낌.

, 이미 기분으로는 하루를 다 보낸 것 같아요.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요.”

매큐는 빙그레 웃는다.

그건 나도 그래. 이상하게 말이야.”

매큐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카페를 나섰다. 나는 갑자기 속이 허해지는 것이 마음인지 몸인지 어딘가에서 공복감이 밀려온다. 뜨거운 입김과도 같은 공기가 방심하는 사이에 카페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저녁까지는 그 열기가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다. 아득한 공기. 고요한 카페. 한바탕 유쾌했던 일들이 지나고 나면 왜 어김없이 이런 쓸쓸함이 찾아오는지. 행복의 그림자에는 이런 감정들이 뒤섞여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부스스 일어나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잘모르겠다. 오늘 하루, 왜 이렇게 넓고 거대할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