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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창하진 않지만, 아주 작은 차이로 현실의 틀에서 살짝 벗어 난 적이 있다. 그 정도의 탈선(?)이 전체 삶의 일정에 큰 변화를 일으키진 못했지만 분명 무언가 도화선이 되긴했다. 오전 수업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섰던 나는 그날에도 어김없이 지하철 안에서 밖의 풍경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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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2009/10/07

  beyondcafe

온난한 이웃의 시로코

-My mild neighbor, Sirocco

      written by Beyondcafe

 

곤히 잠든 강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블랜더에 스무디 믹스를 넣고 얼음을 넣었다. 얼음이 부드러워지는 소리에 한낮 카페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커다란 투명 유리잔에 망고 스무디를 담았다. 차가움이 손끝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제니는 얌전하게 앉아 있다. 지금, 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아주 천천히. 'cry me a river'.  테이블 위에 스무디 잔을 놓았다. 유리잔의 얼음 방울이 투명하게 빛난다. 제니가 붙임성 있는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저기, 치즈케이크 같이 드실래요?”

대뜸 내가 말을 꺼냈다. 배고픔에 덜컥 용기가 생긴 것일까. 제니가 다시 환하게 웃는다. 정말이지 배가 고팠다.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갑자기 락씨의 치즈케이크가 이 세상 마지막 만찬으로 보일 정도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말이 안 되게 말이다. 나는 쇼케이스 안에 있던 치즈케이크 두 조각을 각각 한 조각씩 나눠 접시에 담았다. 연한 케이크의 색상이 새삼 뭉클할 정도로 달콤하게 보인다. 서랍에서 포크를 꺼내었다. Cry me a river… 그녀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고, 나는 감미로운 소리에 땀이 날 지경이다. 배가 고프면서도 말이다. 냉장고에 기네스를 한 병 꺼냈다. 그냥 오늘도 커다란 유리잔에 맥주를 담아 마시고 싶다. 피아노로 마음을 전하는 그녀 앞에서 말이다. 그녀와 나는 테이블에 앉아 천천히 케이크를 먹었다. 활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제니는 말이 없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점심을 함께 하는 파트너를 심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가 그랬다.

“피아노 치기에 적당히 예쁜 손이군요.”

그녀의 손을 쳐다보며 진심으로 말을 건넸다. 제니의 손은 정말 아름답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담게 해주고 싶은 그런 손이었다.

“네. 나쁘진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는 나를 새삼 다시 봐야겠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녀는 하루에 몇 번이나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일까.

“강이 어디서 어디로 흐르는지 혹시 아세요?”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 그녀는 지금 케이크를 오물오물 입에서 녹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강이란 단어만이 내 귓가에 맴도는 것이리라. 우리 카페의 손님들이 지극히 평범할 것이라 지레 짐작한 것은 정말 큰 오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강은, 그러니까 바다로 흐르지 않나요?”

“.....”

“실은, 다 바다로 흐르지 않아요. 강은요, 늘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흘러요. 이렇게요. 자 이렇게요.”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물결을 만들 듯 허공에 음표를 그렸고, 나는 그녀의 손을 따라 흐르는 음률을 천천히 감상했다. 마음이 전해지는 손짓. 그녀에겐 그렇게 지금 강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런대로 이런 제니도 나쁘지 않은 손님이라고 잠깐, 아주 잠깐 생각한다.

“어느 날 카페에서 cry me a river를 치고 있었어요. 제 앞에선 동료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저도 속으로 흥얼거렸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그러니까 아주 짧은 순간에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 그렇게 흐물흐물해져 버린 거예요 제가. 그런 느낌 모르실거예요. 건반을 칠 수가 없었어요. 갑자기 눈물이 뚝 하고 제 손등에 떨어지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아무 일도 되질 않았죠. 지금껏 그저 노래만 부르고 있어요. 이상하게도 말이죠.”

제니는 한숨을 쉬었다. 포크로 케이크를 잘게 자르며 입안에 가득 바람을 넣고 있다.

“근데, 저 노래 못하거든요. 엉망. 최고 엉망이요. 피아노는 자신 있는데, 제 목소리는 어떻게 못 하겠어요. 왜 지금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것도, 정말 아주 잘 부르고 싶은 거죠. 노래 부르면서 피아노를 치고 싶어요. 네‥그게 전 하고 싶어요.”

제니는 말을 마친 후, 다시 스무디를 마시며 창밖을 응시했다. 갑자기 쓸쓸한 기운이 퍼진 제니의 옆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왜 갑자기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으며 그 무엇도 결정되어지지 않았음에도, 뚜렷한 감정과 생각들은 저 밑바닥 어디에선가부터 올라와 툭 하니 모습을 드러낸다. 그게 왜 지금이냐고, 왜 이제냐고 물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정말 그게 그런 것이다. 제니의 피아노 솜씨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락씨도 칭찬했을 것이다. 물론 그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갑자기 Diana Krall의 ‘Cry me a river'가 나온다. 아까 트랙에 넣었던 순서가 지금인가 보다. 그녀의 목소리는 벌써 한가득 울음을 삼킨 듯 애잔하고 감미롭다. 락씨가 말한 아름다운 슬픔이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이리라. 사람들은 제각각 아주 잘하는 일 한가지씩은 있다고 한다. 잘하는 것과 잘하고 싶은 것이 서로 맞아 떨어진다면 그게 정말 행운이리라. 제니는 피아노를 잘치고, 이번에는 또 노래를 잘 부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커피를 잘 만들지만, 케이크도 잘 만들고 싶다. 락씨는 요리를 잘하지만, 서점도 잘 운영하고 싶다. 둘 다 잘하는 것. 그게 제니는 지금 필요한 것이다. 접시는 이미 치워졌고, 망고 스무디와 기네스가 서로 마주 앉아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 내가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고, 한동안 냉장고를 째려보았던 때처럼 제니도 그런 마음일까. 조금은 화가 나고, 억울하고, 코미디 같고, 어이가 없는 그 기분. 제니도 그럴까.

  J에게 내가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있어주고, 함께 웃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녹차를 좋아했다. 커피 냄새에 현기증이 난다며, 취하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겠다던 그녀다. 나는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향이 퍼지면 온 마음으로 세상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그녀와 함께 하는 모든 것들이 커피향 같았다. 그 무렵 새엄마가 돌아가셨고, 형은 이민을 가버렸다. 아버지가 처음 새엄마를 데려왔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새엄마의 아들은 대학생이었다. 새엄마가 생기고 형이 생기면서 나는 매년 새엄마가 정성스럽게 짜주신 목도리를 목에 두르며 엄마가 돌아가신 겨울을 견뎠다. 새엄마는 털실로 목도리를 잘 만드셨던 분이었다.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그건 엄마가 살아계셨을 때도 그랬다. 인생이 늘 같은 톤이고 같은 색깔이 아닌 것처럼 엄마가 바뀌어도 삶은 늘 그런 식이었다. 새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몇 달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내게 죽음은, 연이은 이벤트 같은 일이 되었고 담담하게 이어지는 감정들이 가라앉을 때마다 J는 곁에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J는 사라졌다. 내가 케이크를 잘 만들 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바로 그날부터‥‥. 나는 과연 무엇을 더 잘했어야 했을까.

제니가 날 뚫어져라 쳐다본다. 잠시 너무 멍하게 있었던 모양이다. 제니가 다시 편하게 피아노 앞에서 건반을 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다. 노래를 부르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누구를 위해서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그녀가 알았으면 좋겠다.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내가 제니에게 물었다.

“글쎄요, 음… 초등학교 때부터 쳤으니까요. 한 8년 정도? 악보마다 다 칠 수 있겠더라고요. 제 맘에도 들고요.”

“그럼, 노래도 한 8년만 연습 해봐요. 피아노는 그렇게 오래 치면서, 노래는 몇 번 연습 안하고 그렇게 실망했다는 표정은 심하잖아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제니의 눈이 흔들린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한 것 같다. 결국 잘할 수 있는 것에도 시간은 필요하니까. 누구나 잘하는 게 한 가지씩 있으면서도, 잘 하지 못하는 것 또한 한 가지씩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마치, 이 우주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처럼 군다. 가장 쉽고 간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도 J에게 뭘 더 잘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내가 표현했던 모든 것들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원했던 J에게, 더 이상 나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커피를 싫어하는 J를 사랑했던 것은 J가 뭘 잘해서도 잘 못해서도 아니었다. 날 떠난 이유도 그렇게 명백하리라. 제니를 보며 나는 내가 인정하지 못했던 부분을 그렇게 인정해 가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강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흐른다고 했던가.

 

to be continued....